1아이고, 우리새끼..우리 새끼가 왔네

15년 만에 돌아온 딸의 설날 - 지리산 자락에서 기다린 부모의 이야기

15년 전, 인천공항에서의 이별

그날이 자꾸 생각납니다. 15년 전 딸아이가 짐을 싸서 인천공항으로 떠나던 그날이요.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자주 올게요." 그렇게 말하던 해진이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돕니다.

싱가포르는 너무 멀었고, 딸아이는 이제 우리 곁을 떠나는 거라는 걸 우리 부부는 알고 있었어요. 지리산 자락에서 30년을 살아온 우리에게 딸은 전부였습니다.

점점 멀어지는 거리

처음 15년 전만 해도 일주일에 한 번은 꼭 영상 통화를 했었어요. 명절 때마다 비행기 타고 와서 우리랑 함께 시간을 보냈고요. 그런데 5년 전부터였을까요? "일이 생겨서", "프로젝트 마감이라서" 하며 못 온다는 말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하루에도 몇 번씩 휴대폰을 확인하세요. 해진이한테 카톡이 왔나 확인하시는 거죠. 요즘엔 연락이 뜸해서 정말 잘 지내고 있는지, 아픈 데는 없는지, 밥은 제대로 먹고 다니는지 너무 궁금하고 보고 싶은데 물어볼 수도 없어요.

부모의 마음, 자식은 모릅니다

지난 겨울부터 남편이 허리 통증으로 고생하고 있고, 저도 혈압약을 먹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해진이한테 말하지 않았어요. 말하면 어쩌려고요?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와요? 걱정만 끼칠 거 아니에요.

딸을 보고 싶지만 딸의 짐이 되고 싶지 않은 거요. 이게 부모 마음입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이미 힘들어 하는 딸에게 늙은 부모의 병까지 걱정하라고 할 수가 없었어요.

설날을 일주일 앞두고

냉동실에 가래떡을 넣어두며 중얼거렸어요. "우리 해진이가 올해 설에 오겠지." 해진이 방도 정리하고, 이불도 햇볕에 말렸습니다. "혹시 해진이가 오면 뽀송뽀송한 이불에서 자야죠."

그런데 해진이한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미안해요. 회사의 프로젝트 마감을 해야해서 이번 설에도 못 갈 것 같아요." 전화기를 든 손이 떨렸습니다. 이번엔 올 줄 알았는데... 냉동실에 넣어 둔 가래떡도, 정리해 둔 해진이 방도, 준비해 둔 반찬들도 모두 헛된 기대였네요.

설날 아침의 기적

설날 아침, 남편과 함께 간단하게 떡국을 끓이고 있었어요. 어차피 우리 둘 뿐인데요. 그때였습니다. 대문 밖에서 눈을 밟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어요.

"엄마, 아빠!" 듣자마자 알았어요. 가스레인지 불을 끄다 말고 뛰어나갔습니다. 맨발로, 슬리퍼도 신지 않고요. 현관문을 확 열었어요. 눈쌓인 마을길에 큰 캐리어를 끌고 우리 해진이가 서 있었습니다.

"엄마!" "해진아!" 달려가서 딸을 꼭 껴안았습니다. 너무 세게 안아서 딸이 숨을 못 쉴 정도로요. "아이고 우리 새끼, 우리 새끼가 왔네." 눈물이 쏟아졌어요. 참으려 해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15년 만에 내린 결심

"어떻게 온 거야? 회사 일이 바쁘다며?" "엄마, 아빠, 저 회사 그만뒀어요." 해진이의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제가 미쳤던 거 같아요. 15년 동안 엄마 아빠 곁에 없었잖아요. 돈 벌고 성공하는 게 다가 아니더라고요."

"엄마 아빠가 더 중요해요. 이제 한국으로 돌아올 거예요." 다시 한번 딸을 꼭 껴안았습니다. 남편도 해진이도 우리 셋 모두 울고 있었어요. 이렇게 행복한 설날은 처음이었습니다.

가족이 함께한 설날 아침

부엌으로 가서 서둘러 상을 차렸습니다. 텃밭에서 가져온 배추로 담근 김치, 된장찌개, 냉동실에 넣어뒀던 가래떡. 남편이 안방에서 산삼주 한 병을 꺼내 오셨어요. "해진이가 좋아하던 거잖소. 우리 딸 왔으니 오늘은 잔칫날이요."

해진이가 가래떡을 한 입 물었어요. 그리고는 눈을 감고 천천히 씹더니 눈물을 흘렸습니다. "엄마의 맛이에요. 엄마의 손맛 정말 그리웠어요. 싱가포르에서 아무리 맛있는 거 먹어도 엄마 음식 맛이 안 났어요."

가족의 의미를 다시 깨닫다

"매일 정신없이 일하고 밤 늦게 집에 가고...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요. 엄마 아빠가 이 고요하고 느린 집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사시는지. 저는 복잡한 도시에서 그걸 잊고 살았어요."

며칠이 훌쩍 지나갔어요. 해진이는 서울로 먼저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엄마, 아빠, 다음 달에 다시 올게요. 아니, 한 달에 한 번씩 꼭 올게요." 택시가 떠나고 우리는 손을 흔들었어요. 이번엔 슬프지 않았습니다. 다시 만날 걸 알고 있으니까요.

늦지 않은 깨달음

집으로 돌아와 거실 벽을 봤어요. 15년 전 졸업 사진 옆에 며칠 전 찍은 가족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습니다. 이제야 우리 가족이 다시 시작하는 것 같아요.

늦었나요? 아니에요. 늦지 않았어요. 지금이라도 깨달았으니, 지금부터라도 함께할 수 있으니 그걸로 충분해요. 창밖으로 지리산이 보입니다. 고요하고 평화로운 우리 집.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곳은 바로 여기, 가족이 있는 이곳이에요.

모든 자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혹시 여러분도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부모님을 멀리하고 계신가요? 돈 벌고 성공하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며 살고 계신가요? 명절에도 회사 일 때문에 고향에 내려가지 못하나요?

부모님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당신을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전화 한 통, 영상 통화 한 번이 부모님께는 세상 전부입니다. 바쁘더라도 부모님께 연락하세요. 가끔은 고향에 내려가세요.

부모님이 건강하실 때, 기다리고 계실 때 찾아뵙는 것이 진짜 효도입니다. 너무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가세요. 돈과 성공보다 소중한 것은 바로 가족의 사랑입니다.

해진이처럼 15년이 걸릴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바로 부모님께 전화하세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곧 갈게요"라고 말씀드리세요. 그 한마디가 부모님께는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