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에 떠난 첫 여행 이야기

71세에 떠난 첫 여행… 며느리의 한마디가 내 인생을 바꿨습니다

"어머님은 이제 손주나 봐주시면 되지 않나요?" 그 한마디가 제 71년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나는 정말 손주만 봐야 할 나이가 된 걸까? 나를 위해 사는 것은 정말 이기적인 걸까? 그날 이후, 제 삶은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71세, 처음으로 나를 위한 여행길에 오르다

평생 가족을 위해 밥 짓고 설거지하고 살았던 제게 여행은 늘 '남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친구의 부고 소식을 들으며 말했습니다. "여보, 우리도 살아야 하지 않겠나? 우리도 떠나보자." 그 말 한마디에 제 삶이 흔들렸고, 저는 71살에 처음으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며느리의 차가운 말과 가족의 반대

여행 계획을 알렸을 때 며느리 수진이는 차갑게 말했습니다. "어머님은 이제 손주나 봐 주시면 되지 않나요? 여행은 무슨…" 아들도 반대했습니다. "엄마, 나이가 있으시잖아요. 무리하시면 안 돼요." 하지만 저는 결심했습니다. 이번만은 나를 위해 살자고. 40년 동안 옷장 속에 숨겨뒀던 빨간 원피스를 가방에 넣었습니다.

교토, 대만, 하노이… 그리고 새로운 나

교토의 금각사를 보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나는 왜 이제야 이런 걸 보게 된 걸까' 대만 스린야시장에서 길을 잃었을 때, 한 할머니가 제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 따뜻한 손길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도 나처럼 평생 누군가를 위해 살았겠구나.

하노이 호안끼엠 호수에서 태극권을 배웠고, 하롱베이에서는 안개 속 섬들을 보며 생각했습니다. '내 인생도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치앙마이에서 쓰러져 보며 깨달은 것

치앙마이에서 갑자기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을 때,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깨달았습니다. '나는 평생 누군가를 위해서만 살았구나…' 단 한 번도 나를 위해 걸어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이 마음을 울렸습니다.

손주 지우가 열이 나서 할머니를 찾는다는 며느리의 전화. 아들이 회사에서 힘들어한다는 전화. 하지만 이번만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며느리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엄마도 엄마 인생이 있어. 준노랑 상의해서 해결해."

마지막 여행지, 코타키나발루에서 찾은 새로운 나

40년 동안 한 번도 입지 못했던 빨간 원피스를 드디어 입었습니다. 거울을 보니 71세 할머니가 빨간 원피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주름진 얼굴, 하얀 머리.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름다웠습니다. "아, 나 이렇게 예뻤구나."

탄중아루 해변에서 석양을 봤습니다. 하늘 전체가 주황색, 빨강, 노랑, 보라로 물들었습니다. 빨간 원피스를 입고 석양 앞에 섰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 나는 여전히 꿈꾸는 사람이다."

아들이 한 말

석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아들에게서 영상 통화가 왔습니다. "엄마, 제가 엄마를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어요. 미안해요. 엄마도 엄마 인생 사세요." 며느리도 말했습니다. "어머님, 이제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엄마 인생 사세요." 71년을 살며 처음 들은 말이었습니다.

당신에게도 말하고 싶습니다

나이는 숫자입니다.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는 없습니다. 혹시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도 평생 누군가를 위해 살아왔다면, 부디 딱 한 번만이라도 '당신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보시길 바랍니다.

71세에 나는 비로소 나를 만났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이 가장 이른 순간이었습니다. 나는 누군가의 엄마, 아내, 며느리가 아니라 김영숙입니다. 71년을 살았고 앞으로도 살아갈 사람입니다.

6개월 후, 저는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71세, 73세, 68세, 70세. 우리는 여전히 꿈꾸는 여자들입니다.

여러분에게도 물어봅니다

여러분에게도 옷장 속에 숨겨둔 빨간 원피스가 있나요? 미루고 밀어둔 꿈이 있나요? 오늘 영숙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 꿈을 꺼내는 용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나이는 핑계가 아닙니다. 용기만 있으면 됩니다. 세상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