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세 시어머니와 함께 캄보디아로… 철문 안에 갇힌 아들을 구하기 위한 기적의 여정
"엄마, 할머니, 살려 주세요!" 새벽 4시 30분, 캄보디아 시야누쿠빌의 낡은 5층 건물 앞. 철문 안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비명 소리. 그 앞에서 나는 무너졌고, 71세 시어머니가 내 손을 꽉 잡았습니다. "에미야, 아들 데리러 왔다고 말해. 민준이 데리고 가야 해." 30년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시어머니의 눈빛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SNS 광고 한 장에서 시작됐습니다
26살 아들 민준이는 'SNS 마케팅 일자리'라는 광고를 보고 캄보디아행을 결심했습니다. "엄마, 한 달만 일하면 300만 원이래. 숙소, 식사 다 제공하고!" 글로벌 코리아 HR이라는 정식 인력 회사의 계약서까지 있었기에 믿었습니다. 하지만 도착 5일 후 마지막 음성 메시지를 남긴 뒤, 민준이와의 연락이 끊겼습니다. "엄마 돈 많이 벌어 올게. 이제 엄마 고생 안 시킬게."
시어머니가 내민 2천만 원과 40년 전의 약속
외교부는 "기다려 달라"고만 했고, 경찰도 "확인 중"이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때 시어머니가 찾아왔습니다. "수진아, 우리 같이 가자. 캄보디아." 그리고 평생 모은 돈 2천만 원이 든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30년 고부 관계에서 한 번도 내 손을 잡아본 적 없던 시어머니였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시어머니는 40년 전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1985년 겨울, 구로공단 봉제공장 화재. 25살 신학생 김태준이 불 속에 뛰어들어 시어머니를 구했고, 시어머니도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가 친구들을 구했습니다. "사람 구하는 일은 아파도 해야 한다는 걸 그때 배웠어." 그 청년은 지금 캄보디아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철문 앞에서 좌절하고, 전국민에게 손을 내밀다
김태준 선교사의 도움으로 민준이가 갇힌 건물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경비원은 5천만 원을 요구했고, 우리에게는 2천만 원밖에 없었습니다. 무릎 꿇고 애원했지만 소용없었습니다. 철문 안에서 들려오는 아들의 비명을 들으며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지막 희망은 SNS였습니다. 페이스북 라이브를 켜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제 아들이 캄보디아에 갇혀 있습니다. 도와주세요." 시청자 0명에서 시작한 방송은 빠르게 확산됐습니다. 10만 명, 50만 명, 200만 명…
6시간 만에 일어난 기적
전국에서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10만 원, 50만 원, 100만 원, 익명의 누군가는 1천만 원을 보냈습니다. "송금했어요. 힘내세요. 꼭 구출하세요." 댓글이 폭포처럼 쏟아졌습니다.
6시간 후, 김 선교사님이 소리쳤습니다. "5,200만 원입니다!" 우리는 서로 껴안고 울었습니다. 전국 70만 명의 시청자가 지켜보는 가운데, 우리는 현금 5천만 원을 들고 다시 그 철문 앞으로 향했습니다.
철문이 열리고, 민준이를 만나다
밤 11시, 철문이 열렸습니다. 좁은 방 구석, 쇠사슬에 묶인 민준이가 있었습니다. 얼굴은 수척했고 눈밑이 검었지만, 살아있었습니다. "엄마… 진짜야?" "그래, 민준아. 엄마 왔어. 데리러 왔어."
시어머니가 민준이를 안았습니다. "민준아, 할머니도 왔어. 너 데리러." 우리 셋은 그렇게 서로 안고 울었습니다. 200만 명이 생중계로 지켜보는 가운데.
30년 고부 갈등이 녹아내린 순간
20년 전 첫째 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을 때, 시어머니가 했던 말이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제대로 못 봐서 그렇지." 그 말이 20년간 내 가슴에 박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캄보디아 게스트하우스에서 시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수진아, 내 어머니 미안해. 20년 전에 너무 심한 말했지. 사실은 내 잘못이었어. 20년간 미안했어." 나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어머니, 저도 미안해요. 20년간 어머니를 원망했어요."
이 이야기가 만든 변화
우리의 생중계는 조회수 200만을 기록했고, 외교부는 '캄보디아 스캠 피해자 구조 전담팀'을 만들었습니다. 김태준 선교사님은 53명을 구출한 공로로 국민훈장을 받았고, 우리 이야기는 다큐멘터리 '철문을 넘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변화는 우리 가족이었습니다. 시어머니는 이제 '며느리야'가 아니라 '수진아'라고 부릅니다. 나도 '어머니'를 부를 때 마음이 따뜻합니다. 민준이는 매주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며 조금씩 회복하고 있습니다.
당신에게도 전하고 싶은 이야기
만약 시어머니가 2천만 원을 내밀지 않았다면, 만약 40년 전 김 선교사님이 불 속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만약 전국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주지 않았다면, 지금 이 순간은 없었을 것입니다.
가족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싸우고, 함께 이겨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낯선 사람들의 따뜻한 손길이 한 가족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토요일 오후, 우리는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십니다. 시어머니, 나, 민준이. 창밖으로 햇살이 들어옵니다. 따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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