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된 흑돼지가 미친 듯이 땅을 파헤친 이유… 40년 전 묻힌 비밀
"흑돈아, 제발 멈춰. 제발 그만 파. 흑돈아, 왜 그러는 거야?" 순간 저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15년을 한 가족처럼 지켜보았지만 그렇게 처절하게 땅을 파헤치는 모습은 정말 처음이었으니까요. 아침부터 녀석은 돈사 옆 오래된 잡풀만 무성한 곳을 미친 듯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200kg의 거구가 내는 절박한 숨소리는 이 평화로운 양돈장을 뒤흔들고 있었죠.
땅 속에서 나온 40년 전 생명보험 증서
흑돈이의 발톱이 돌에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 철수 씨는 녀석의 덩치를 붙잡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철수 씨 눈빛이 이상했습니다. 불안해 보이면서도 뭔가 포기한 것 같았어요. 마치 땅 아래 뭔가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때였습니다. 툭. 흑돈이의 발톱 끝에 두툼한 비닐에 싸인 낡은 것이 걸렸습니다. 철수 씨가 조심스럽게 그것을 꺼내자 40년 전 생명보험 증서와 누렇게 변색된 메모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40년 동안 감춰져 있던, 일찍 세상을 떠난 절친 성훈 씨가 철수 씨에게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어요.
성훈 씨가 남긴 메모의 충격적인 내용
철수 씨는 증서를 보는 순간 온몸에 피가 식는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성훈 씨가 쓴 메모는 이러했습니다.
"형님은 제 생명의 은인입니다. 이 돈은 형님이 힘드실 때 쓰시도록 제가 땅에 묻어둡니다. 형님은 절대 받지 않으실 테니 이렇게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가 힘든 시절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를 용서했고 준우를 제 아들로 키울 거예요. 형님께 이 돈으로 형님의 은혜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철수 씨는 이 메모를 통해 성훈 씨가 아내의 불륜 상대가 자신임을 전혀 모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성훈 씨는 아내가 외도한 사실을 알면서도 용서하고 준우를 자신의 아들로 키웠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 외도의 상대가 바로 은인인 철수 씨라는 것은 끝까지 몰랐던 거죠.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 민수, 보이스피싱에 빠지다
이 가족의 불행은 10년 만에 돌아온 아들 민수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민수는 보이스피싱 조직에 속아 빚더미에 앉았고 그 절박함은 양돈장 전체의 공기를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며칠 뒤 민수가 철수 씨에게 서류를 내밀었습니다. "아버지, 요즘 몸 안 좋으시잖아요. 이참에 좋은 요양원 알아보는데 동의해 주셔야 해요. 여기 지장만 찍으시면 돼요."
민수의 손에는 요양원 입소 동의서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서류가 들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서류는 틀림없이 집과 양돈장의 매매 계약서였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이 민수를 이용해 아버지를 속이는 교묘한 사기 수법이었죠.
흑돈이, 계약서에 서명하려는 순간 덤벼들다
민수가 결국 철수 씨의 손을 잡아 지장을 찍으려는 순간이었습니다. 흑돈이가 갑자기 덤벼들어 민수의 바지단을 물어뜯었어요. "이놈의 돼지가 진짜 왜 그래? 흑돈아, 너 왜 이러는 거야?"
민수가 소리치며 손을 뿌리쳤지만 흑돈이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200kg의 육중한 몸으로 민수와 철수 씨 사이를 완전히 가로막았죠. 흑돈이의 맹렬한 저항 덕분에 철수 씨는 서류에 지장을 찍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성훈 씨의 아들 준우, 철수 씨를 쏙 빼닮다
그때 성훈 씨의 아들 준우가 양돈장을 찾아왔습니다. 성훉 씨가 돌아가신 후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던 준우였어요.
저는 준우를 보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습니다. 준우의 눈매, 웃을 때 올라가는 입꼬리, 심지어 걷는 자세까지도 40년 전 철수 씨의 젊은 시절과 너무나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성훈 씨는 이 진실을 모른 채 준우를 자신의 아이라고 믿고 키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아이는 친아버지인 철수 씨의 모습을 쏙 빼닮아 간 겁니다. 철수 씨는 준우를 보는 순간 40년 전 불륜의 죄가 눈앞에 실체가 되어 나타난 듯한 고통에 몸부림쳤습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마지막 협박
결국 민수는 보이스피싱 조직의 마지막 협박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민수의 보이스피싱 가담 사실을 폭로하겠다고 협박했으니까요. 그날 저녁 민수는 계약서와 증서를 챙겨 마을 외곽으로 급히 나갔습니다.
철수 씨와 저는 민수를 쫓았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민수는 검은 승용차에 강제로 태워지고 있었고 조직원들은 증서를 손에 넣고 차를 몰기 시작했어요.
200kg 흑돈이, 차량에 돌진하다
그때였습니다. 200kg의 검은 그림자가 돈사 문을 박차고 뛰쳐나왔습니다. 흑돈이었습니다. 녀석은 오직 본능에 의지해 자신이 지켜야 할 가족의 운명과 증서가 실린 차를 향해 맹렬히 돌진했습니다.
흑돈이는 자신의 몸이 무사하지 못할 것을 알았지만 멈추지 않았습니다. 차량이 굉음을 내며 흑돈이의 거구에 들이받혔고 앞 유리창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흑돈이는 뒷다리가 꺾이고 온몸이 피범벅이 된 채 쓰러졌지만 그 희생으로 차량이 멈췄어요.
"흑돈아! 흑돈아!" 민수가 쓰러진 흑돈이에게 달려가 울부짖었습니다. 흑돈이의 희생 덕분에 조직원들은 현장에서 모두 검거되었고 집 매매 계약서와 보험 증서 모두 무사히 회수되었습니다.
철수 씨, 40년의 침묵을 깨뜨리다
피를 흘리는 흑돈이를 안고 절규하는 민수를 보며 철수 씨는 마침내 40년의 침묵을 깨뜨렸습니다.
"민수야, 준우는 성훈이 아들이 아니야. 준우 어머니와 나의 아이였어. 성훈이는 그걸 모르고도 내 죄까지 짊어지고 간 거다."
철수 씨의 충격적인 고백에 민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했습니다. 자신의 방황이 아버지의 죄책감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죠.
"나는 그 죄책감 때문에 너에게 온전히 사랑을 주지 못했다. 너의 방황은 다 내 죄야."
흑돈이의 평화로운 마지막
흑돈이의 부상은 너무나 치명적이었습니다. 양돈장으로 돌아온 흑돈이는 흙바닥이 아닌 평생을 지킨 돈사, 가족들의 품 안에서 조용히 마지막 숨을 거두었습니다. 흑돈이는 고통 없이 아주 평화롭게 눈을 감았어요.
"흑돈아, 성훈이의 은혜도 네가 갚고 내 죄도 네가 짊어지고... 네가 다 하고 가는구나." 철수 씨는 울면서 흑돈이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1억 5천만 원, 두 아들에게 나눠주다
며칠 후 철수 씨는 성훈 씨의 생명보험금을 청구했습니다. 1억 5천만 원은 40년 전 성훈 씨가 철수 씨의 생명을 구해준 대가였지만 이제 그 돈은 흑돈이의 희생으로 지켜낸 성훈 씨의 순고한 마음이 깃든 유산이었습니다.
"이 돈은 너희가 나눠 가져야 한다. 성훈이가 나에게 준 은혜이기도 하지만 흑돈이가 피 흘려 지킨 너희들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 돈으로 깨끗하게 다시 시작해라."
민수는 그 돈으로 보이스피싱 관련 빚을 정리하고 남은 돈 전액을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돕는 재단에 기부하며 진정한 회개를 보여주었습니다. 준우는 눈물을 흘리며 그 돈을 받았습니다. 평생 아버지라 믿었던 성훈 씨의 사랑의 결정체였으니까요.
3개월 후, 흑돈이의 딸 흑순이
시간은 쉼 없이 흘러 3개월이 지났습니다. 민수는 이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돈사를 돌보는 진짜 일꾼이 되었습니다. 준우도 매주 주말이면 양돈장에 내려와 민수를 돕고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진정한 형제가 되어 서로를 위하며 양돈장의 미래를 함께 그리고 있었죠.
양돈장에는 흑돈이의 유일한 딸인 흑순이가 새로운 종돈이 되었습니다. 흑순이는 아버지를 쏙 빼닮은 건강하고 영리한 녀석이었죠.
"흑순아, 너의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살렸어. 너는 이제 이 집의 기둥인 거야." 민수가 흑순이를 쓰다듬으며 말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흑순이는 흑돈이가 증서를 파냈던 그 자리로 걸어가더니 코를 박고 흙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흑돈이의 영혼이 그 자리에 남아 흑순이를 통해 가족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어요.
가족이란 피가 아니라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
철수 씨의 죄와 성훈 씨의 은혜, 민수의 방황과 준우의 외로움. 이 모든 비극을 끊어낸 것은 결국 말 못하는 검은 돼지 흑돈이의 피 흘린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이제 양돈장의 검은 돼지는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가족의 영원한 수호신입니다. 녀석의 순고한 정신은 흑순이를 통해 대를 이어 이 평화로운 땅을 지켜 나갈 것입니다.
가족이란 피가 아니라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걸 흑돈이가 가르쳐 주었습니다. 15년을 한 가족으로 살아온 흑돼지 한 마리가 40년의 비밀을 파헤치고, 가족의 운명을 구하고,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보여준 이야기. 짐승이 사람보다 더 깊은 진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0 Comment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