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김치 냉장고에 숨긴 비밀

엄마 장례 후 김치 냉장고를 열었더니… 20년간 숨겨둔 생일 편지와 3천만 원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저는 혼자 엄마 집 열쇠를 쥐고 현관문 앞에 서 있었어요. 열쇠를 돌리는 순간 문 안쪽에서 엄마 특유의 그 냄새가 풍겨 나왔습니다. 된장찌개 끓이던 냄새, 빨래 널고 난 후의 섬유유연제 향, 그리고 엄마가 즐겨 쓰시던 핸드크림 냄새까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냉장고에 가득한 반찬통, 하나하나 적힌 메모

부엌으로 들어서자마자 저는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싱크대에는 설거지가 깨끗하게 되어 있었고 도마 위에는 딱 한 번 쓸 분량의 파가 떨어져 랩으로 싸여 있었어요. 엄마는 돌아가시기 전날까지도 이렇게 정갈하게 부엌을 정리하셨던 거죠.

냉장고를 열어봤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어요. 냉장고에는 온통 반찬통으로 가득했습니다. 김치, 깍두기, 장조림, 멸치볶음, 콩자반, 나물 무침들. 각각의 통마다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거기에는 엄마의 손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은주 좋아하는 거" "사위 입맛 맞춰서"

엄마는 언제 이걸 다 준비하신 거예요? 엄마는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저희 가족을 생각하며 반찬을 만드셨던 겁니다. 제가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찾아뵙지 못했는데도 엄마는 혼자서 이렇게 제 가족을 챙기고 계셨던 거죠.

김치 냉장고 속, 20개가 넘는 갈색 봉투

냉장고 문을 닫으려는데 맨 아래 김치 냉장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엄마가 10년도 넘게 쓰시던 낡은 김치 냉장고였어요. 저는 무심코 그 문을 열었죠.

김치통들 사이로 뭔가 다른 게 보였습니다. 맨 아래 서랍을 꺼내 보니 거기에는 김치통이 아닌 갈색 종이 봉투들이 있었어요. 하나, 둘, 셋... 세어 보니 20개가 넘었죠. 각 봉투마다 날짜가 적혀 있었는데 제 생일 날짜들이었어요.

25살 생일 편지 "결혼 준비로 바쁘지"

맨 위에 있던 봉투를 집어들었어요. 거기에는 "은주 25살 생일 1999년 4월 15일"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봉투를 열자 안에서 편지 한 장과 만 원짜리 지폐 다섯 장이 나왔죠.

"딸아, 25번째 생일 축하한다. 결혼 준비로 바쁘지? 엄마는 네가 행복하면 그걸로 됐어. 시집 가서도 우리 은주 환하게 웃으며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 돈으로 네가 입고 싶은 옷이라도 하나 사 입어. 사랑한다, 우리 딸. 엄마가"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요. 25살 그때 저는 결혼 준비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엄마가 생일 축하한다고 전화하셨을 때 저는 "지금 바빠, 나중에 전화할게" 하고 끊어버렸던 기억이 났어요. 그리고 그 '나중'은 오지 않았습니다.

26살 생일 편지 "시댁 생활은 괜찮니?"

두 번째 봉투를 열었어요. "은주 26살 생일 2000년 4월 15일"

"딸아, 벌써 결혼한 지 1년이 됐구나. 시댁 생활은 괜찮니? 엄마한테는 힘든 내색 안 하지만 전화 목소리 들으면 다 알아. 며느리 노릇이 쉽지 않지? 엄마도 그랬으니까 다 알아. 그래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네 몸도 챙겨가며 살아라."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그때 저는 정말 힘들었어요. 시어머니 눈치, 시누이 눈치 보느라 매일이 전쟁 같았고 남편은 "우리 엄마는 원래 그래" 하며 저를 이해해주지 않았죠. 엄마한테 전화할 때마다 "잘 지내, 다 좋아" 하고 웃으며 말했었어요. 그런데 엄마는 다 알고 계셨던 거죠.

엄마의 고백 "아빠는 다른 여자 만나서 재혼했어"

편지를 읽을수록 제 잘못이 보였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나서 엄마를 멀리했어요. 시댁 눈치가 보여서 친정에 자주 가면 안 된다고 스스로 선을 그었죠.

그리고 엄마 친구 경숙 언니에게 들은 진실. 제 아빠는 사업 실패 후 집을 나간 게 아니라 다른 여자를 만나서 재혼했다는 것. 엄마는 우리 남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아빠를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하고 싶지 않으셨대요. 혼자서 시장 반찬 장사하면서 우리 둘을 대학까지 보내셨던 거예요.

경숙 언니가 전한 마지막 편지와 3천만 원 통장

엄마는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 경숙 언니에게 봉투 하나를 맡기셨다고 했어요. 봉투 안에는 편지 한 장과 통장이 들어 있었습니다.

"은주야, 엄마가 이 편지를 쓰고 있다는 건 아마 엄마가 곁에 없다는 뜻이겠지. 김치 냉장고 안에 엄마가 너에게 쓴 편지들이 있어. 다 읽어 봐. 그게 엄마가 평생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이야. 그리고 이 통장, 엄마가 평생 모은 거야. 너를 위해 모았어. 시댁 눈치 보지 말고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엄마처럼 참기만 하는 삶 살지 마. 사랑한다, 우리 딸. 엄마가"

통장 잔액은 3천만 원. 엄마가 평생 모은 돈이었어요. 시장에서 반찬 팔아서 한 푼, 두 푼 모으신 돈.

45살 생일, 엄마의 마지막 편지

마지막 봉투를 열었습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쓰신 편지였죠.

"은주야, 엄마 마지막 편지일 것 같구나. 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을 짓더라. 딸아, 엄마 이제 오래 못 있을 것 같아. 근데 후회는 없어. 너희 둘 잘 키웠고 너희가 행복하게 사는 걸 봤으니까.

딸아, 엄마가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 엄마처럼 살지 마. 참기만 하고 네 행복을 뒤로 미루고 다른 사람 눈치만 보면서 살지 마. 네 인생은 네 거야.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살기 전에 너는 은주라는 한 사람이야. 그걸 잊지 마.

엄마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어. 이제 와서 내 인생을 살기엔 늦어버렸어. 근데 너는 아직 늦지 않았어. 사랑한다, 우리 딸. 항상 네 편이야. 엄마가"

시어머니에게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다

편지를 다 읽고 나서 시댁으로 돌아가는 길, 시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은주야, 지금 어디야? 왜 새벽부터 집에 없어?" "친정 집에 또? 은주야, 이제 그만 좀 해. 돌아가신 분한테 언제까지 매달릴 거야?"

순간 멈춰섰어요. 그리고 제 목소리를 냈습니다. "어머님, 제 엄마 장례 치른 지 한 달도 안 됐어요. 제가 슬퍼할 시간 좀 주시면 안 돼요?" "전 한 달 동안 참았어요. 엄마 보고 싶어 죽겠는데 시댁일 한다고 참았어요. 근데 이제 못 참겠어요."

20년 만에 처음으로 제 목소리를 낸 거였습니다.

시어머니의 고백 "나도 후회해"

다음날 시어머니와 마주 앉았습니다. 시어머니가 말씀하셨어요.

"은주야, 나도 며느리살이 했어. 나도 시집와서 많이 참았어. 나도 친정 엄마 돌아가셨을 때 울고 싶었어. 근데 못 울었어. 시댁일 한다고, 제사 준비한다고. 그래서 네가 이해가 안 가는 거야. 나는 그렇게 참고 살았는데 왜 너는 못 참아?"

"근데 어젯밤에 생각했어. 내가 과연 잘 산 걸까? 참고 참았던 그 시간들이 정말 의미가 있었을까? 은주야, 솔직히 말할게. 나도 후회해. 내 엄마한테 잘해드리지 못한 거. 시댁 눈치 보느라 친정을 멀리한 거."

"그래서 네가 미웠어. 너는 나보다 자유롭잖아. 네 감정을 표현하잖아. 그게 부러웠어."

3개월 후, 엄마 생신날

시간이 흘러 엄마 생신날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남편, 아이들, 시어머니, 오빠, 가족 모두 함께 엄마 산소에 갔죠.

시어머니도 절을 하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사돈 어른, 제가 며느리한테 잘못했습니다. 사돈 어른 따님, 이제 제대로 아끼겠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를 위한 상을 차렸어요. 엄마가 좋아하시던 음식들로 가득 채웠죠. 온 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았습니다.

엄마가 남긴 가장 큰 유산

저는 이제 제 인생을 살고 있어요. 며느리로, 아내로, 엄마로서의 역할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은주로서 살고 있어요. 제 감정을 표현하고, 제 의견을 말하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요.

그리고 그게 저만 행복한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엄마가 남긴 가장 큰 유산은 3천만 원이 아니었어요. 김치 냉장고 속 편지들도 아니었어요. 제 인생을 되찾을 용기였어요. 나 자신을 사랑할 힘이었어요.

딸에게 쓰는 편지

저는 이제 제 딸에게도 편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김치 냉장고 서랍에 엄마의 편지들 옆에 제 편지를 넣었습니다.

"딸아, 엄마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엄마처럼 참기만 하지 말고 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렴. 네 인생은 네 거란다. 며느리로, 엄마로 살기 전에 너는 너라는 한 사람이야. 그걸 절대 잊지 마. 사랑한다, 우리 딸. 엄마가"

엄마가 제게 해주셨던 것처럼 저도 딸에게 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엄마의 사랑은 계속될 거예요. 저를 통해, 제 딸을 통해, 또 그다음 세대로.

당신의 엄마도 숨겨둔 사랑이 있을지 모릅니다

혹시 당신도 시댁 눈치, 남편 눈치 보느라 친정 엄마를 멀리하고 계신가요? 바쁘다는 핑계로 엄마 전화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계신가요? 며느리로, 엄마로, 아내로 살느라 정작 '나'는 잃어버리고 계신가요?

엄마는 당신이 힘든 걸 다 알고 계십니다. 전화 목소리만 들어도, 웃는 표정만 봐도 다 아세요. 하지만 시댁 눈치 보일까 봐 찾아가지 못하시는 겁니다.

너무 늦기 전에 엄마께 전화하세요. 바쁘더라도 한 달에 한 번은 친정에 가세요. 그리고 엄마에게 말씀하세요. "엄마, 사랑해요"라고.

엄마는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참기만 하는 삶이 아니라 당신의 목소리를 내며 사는 삶을요. 그게 엄마가 평생 바라는 유일한 소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