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 걸린 시어머니 방에서 발견한 통장… 30년간 숨겨진 30억원의 비밀
아침 6시면 저는 시어머니 방문을 엽니다. 양약 냄새와 오래된 이불 냄새가 섞인 공기가 코를 찌르죠. 시어머니는 이불 위에 앉아 어디론가 전화를 거시는 척을 하고 계세요. "어머니, 아침 드셔야죠." "내 도장 어디 있어? 도장 찾아야 해." 매일 아침 똑같은 말씀이에요. 시어머니의 치매가 시작된 지 이제 여섯 개월째입니다.
매일 찾는 도장, 옷장 숙한 곳에서 발견한 나무 상자
어느 날 시어머니가 방안을 뒤지고 계셨어요. 옷장문은 활짝 열려 있고 서랍이란 서랍은 다 뒤집어져 있었어요. "내 도장, 내 도장 어디 갔어?" 저는 한숨을 쉬며 흩어진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죠.
옷장 깊숙한 곳에 손을 넣었을 때였어요. 뭔가 딱딱한 게 손에 잡혔습니다. 낡은 나무 상자였어요. 먼지가 잔뜩 쌓인 걸 보니 꽤 오래된 것 같았죠. 상자를 열었어요. 그 안에는 도장 하나와 낡은 수첩, 그리고 통장 몇 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금주 김지영, 30년간 매달 100만 원씩 입금
무심코 통장을 펼쳤는데 제 이름이 보였어요. 예금주 김지영. 이게 뭐지?
첫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30년 전 날짜부터 매달 100만 원씩 입금된 기록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어요. 손이 떨렸습니다. 다음 페이지, 또 다음 페이지. 단 한 달도 빠짐없이 30년 동안 계속된 입금 내역.
계산기를 두드렸어요. 100만 원 × 12개월 × 30년 = 3억 6천만 원. 거기에 이자까지 합치면... 30억이 넘는다고?
통장을 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어요.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왜 제 명의로 된 통장이 시어머니 방에 있는 걸까요?
"그건 내 거야" 잠깐 정신 돌아온 시어머니
뒤에서 시어머니 목소리가 들렸어요. "그거, 그거 찾았구나." 돌아보니 시어머니가 문 앞에 서 계셨어요. 잠깐 정신이 돌아오신 건지 눈빛이 또렷해 보였습니다.
"어머니, 이게 대체 뭐예요?" "그건 그건 내 거야." "제 거요? 왜 제 명의로 이런 통장이?" "나중에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시어머니는 그렇게 중얼거리시더니 다시 멍한 표정으로 돌아가셨어요.
시댁 식구들의 의심 "형수님이 명의 도용한 거 아니에요?"
주말 오후 거실에 시댁 식구들이 모였어요. 저는 떨리는 손으로 통장을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어요.
첫째 시동생이 통장을 집어들었어요. 표지를 보더니 눈을 크게 떴습니다. "예금주가 형수님 이름이네. 이게 뭐예요?" "저도 몰라요. 어머니 방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발견했어요."
남편이 통장을 넘겨받아 내역을 확인했어요.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더니 한참을 말없이 페이지만 넘기고 있었죠. "이거 30년 전부터 매달 100만 원씩..."
둘째 시동생이 벌떡 일어났어요. "형님, 이거 어떻게 된 거예요? 어머니가 형수님 명의로 돈을 모아놨다고요?"
둘째 며느리가 날카롭게 끼어들었어요. "어머니가 치매 걸리신 거 다들 아시잖아요. 혹시 형수님이 어머니 도장 몰래 써서..." 순간 머리가 하얘졌어요. 제가 시어머니 재산을 가로챘다는 말인가요?
은행에서 확인한 진실 "입금자는 박순자님, 며느리 노후 대비"
다음날 아침 저는 혼자 은행을 찾아갔어요. 창구 직원에게 통장을 건네며 말했습니다. "이 통장 거래 내역 전체를 확인하고 싶어요."
"1995년 3월부터 시작된 적금이시네요. 매달 정확히 100만 원씩 입금되셨고요." "입금자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나요?" "잠시만요. 입금자는 박순자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박순자. 시어머니 성함이에요. "그리고 여기 통장 뒷면에 메모가 있으시네요. '지영이 노후 대비'라고 쓰여 있어요."
가슴이 철렁했어요. 시어머니가 직접 제 이름으로 적금을 들어주신 거였어요. 30년 동안 단 한 달도 빠짐없이.
"이 통장은 언제 만들어진 건가요?" "1995년 3월 15일이요. 고객님, 첫 아드님 낳으신 달이네요. 여기 개설 일지에 '며느리 노후 준비'라고 적혀 있어요."
눈물이 핑 돌았어요. 첫째를 낳던 그때, 산후조리원에서 힘들어하던 저를 시어머니가 매일 찾아오셨죠. 그때 시어머니는 이미 이 통장을 만들고 계셨던 거예요.
시어머니의 낡은 수첩 "지영이가 나중에 혼자 남으면..."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 방을 정리하던 중 낡은 수첩 한 권을 발견했습니다. 수첩을 펼쳤어요. 시어머니의 흘려 쓴 글씨가 가득했어요.
"1995년 3월 - 지영이가 아들을 낳았다. 내 손자. 지영이는 고생이 많다. 앞으로 이 집에서 잘 살 수 있게 나라도 뭔가 해줘야겠다."
"1997년 5월 - 지영이가 둘째 임신했다. 입덧이 심한데도 시댁일 다 한다. 미안하다. 말로는 못 하지만 이 통장만큼은 끝까지 채워주고 싶다."
"2003년 7월 - 큰아들 학교 문제로 지영이가 울었다. 며느리가 우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프다. 내가 며느리였을 때 생각이 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눈물이 쏟아졌어요. 30년 동안 시어머니는 저를 보며 이런 마음을 품고 계셨던 거예요.
수첩 마지막 페이지에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며느리가 나중에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도록, 혼자 남겨져도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살아생전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시어머니의 50년 친구 김할머니가 밝힌 진실
어느 날 옆집 김할머니가 반찬통을 가득 들고 오셨습니다. "지영아, 요새 고생이 많다며? 이거 좀 먹어." 김할머니는 시어머니와 50년지기 친구셨어요.
"지영아, 너한테 할 말이 있어서 왔어." "네?" "순자, 그 통장 이야기 말이야. 나는 알고 있었어."
가슴이 철렁했어요. "30년 전 순자가 그 통장 처음 만들 때 나한테 말했거든. '김할머니, 나 오늘 며느리 이름으로 적금 하나 들었어.'"
"그때 내가 물었지, 왜 며느리 이름으로 하냐고. 그랬더니 순자가 그러더라. '나는 며느리였을 때 너무 힘들었어. 지영이는 그런 일 없게 하고 싶어.'"
시어머니의 아픈 과거 "남편 잃고 시댁에서 쫓겨날 뻔"
"순자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나는 다 봤어. 남편 잃고 시댁에서 쫓겨날 뻔했을 때 매일 울면서 내 집에 왔었어."
"그때 순자가 나한테 그랬지. '나는 며느리 신분이라 아무것도 아니구나. 남편 없으면 이 집에 있을 자격도 없구나.'"
김할머니가 가방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셨어요. 30년도 더 된 것 같은 바랜 사진이었어요. 사진 속에는 젊은 제가 아기를 안고 있고 옆에 시어머니가 서 계셨어요.
"이날 순자가 나한테 말했어. '드디어 우리 집에도 새 생명이 왔어. 이 아이랑 며느리를 내가 평생 지켜줄 거야.'"
더 오래된 일기장 발견 "1978년, 시댁에서 나가라고"
저는 시어머니 방 서랍을 다시 뒤졌어요. 또 다른 수첩이 만져졌습니다. 수첩을 펼쳤어요. 더 오래된 일기장이었어요. 1970년대부터 적힌 시어머니의 기록이었죠.
"1978년 2월 - 남편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아이 셋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시댁에서는 나보고 친정으로 가라고 한다. 내가 이 집 며느리인데, 아이들 엄마인데."
"1978년 5월 - 시어머니가 내 방 짐을 싸라고 하셨다. 며느리는 남편 죽으면 나가는 거라고. 나는 무릎 꿇고 빌었다. 아이들만은 이 집에서 키우게 해달라고."
"1978년 8월 - 결국 나는 집에 남았다. 대신 시어머니 수발을 평생 들기로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
숨이 막혔어요. 시어머니도 저처럼 며느리었던 시절이 있었던 거예요. 남편을 잃고 시댁에서 쫓겨날 뻔했던 그 아픔을.
"1995년 - 큰아들이 결혼했다. 며느리 지영이는 착한 아이다. 저 아이가 나중에 내 신세를 겪지 않게 하고 싶다. 혼자 남겨져도 이 집에서 쫓겨나지 않게, 내가 평생 모은 돈으로라도 저 아이를 지켜주고 싶다."
시어머니 상태 악화, 시댁 식구들의 욕심
그날 이후 시어머니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어요.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의사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말씀하셨어요. "치매가 말기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버티실 수 있을까요? 길어야 몇 개월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에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었어요. 첫째 시동생이 입을 열었어요. "형수님, 엄마를 전문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어떨까 싶어요."
둘째 시동생이 끼어들었어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그 통장 문제도 있잖아요. 30억이 넘는 돈인데 형수님한테만 가는 게..."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시간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시어머니의 마지막 편지 "지영아, 이 집은 네 집이야"
시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갔어요. 폐렴이 심각했습니다. 중환자실 유리창 너머로 시어머니가 온갖 기계에 연결되어 누워 계셨죠.
새벽 3시, 간호사가 급하게 나왔어요. "보호자분들, 환자분 의식이 돌아오셨어요."
시어머니가 저를 찾고 계셨어요. "지영이, 지영이 어디 있어?" "여기 있어요, 어머니. 제가 여기 있어요."
"지영아, 미안하다." "어머니, 괜찮아요. 말씀 안 하셔도 돼요." "아니야, 꼭 해야 해. 내가 살아생전에 네 편을 더 들어줬어야 하는데 겁이 났어."
"너는 이 집 사람이야. 절대 쫓겨나면 안 돼. 그 통장은 네 거야. 다 네 거야. 약속해, 이 집에 남겠다고."
"네, 어머니. 약속할게요." 시어머니가 미소를 지으셨어요.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장례식장에서 밝혀진 또 다른 편지
시어머니 장례식장에서 김할머니가 낡은 봉투를 꺼내셨어요. "이거 봐. 순자가 나한테 맡긴 거야. 내가 치매 걸리면 이거 지영이한테 전해달라고."
김할머니가 편지를 읽기 시작하셨어요. "지영아, 이 편지를 읽고 있다면 아마 내가 치매에 걸렸거나 이미 세상을 떠난 후일 거야. 너한테 할 말이 많은데 말로는 차마 못 했구나."
"나는 네가 이 집에 시집온 날부터 걱정이 많았어. 며느리라는 자리가 얼마나 외롭고 힘든지 나는 너무 잘 알거든. 나도 그 길을 걸어왔으니까."
"남편을 잃고 시댁에서 쫓겨날 뻔했을 때 나는 생각했어. 세상에서 제일 약한 사람이 며느리구나. 아무리 헌신해도 남편 없으면 이 집에 있을 자격이 없구나."
"그래서 나는 결심했어. 내 며느리만큼은 그런 두려움 없이 살게 해주고 싶다고. 30년 동안 매달 적금을 넣으면서 나는 기도했어. 지영이가 평생 이 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그 돈은 지영이 거야. 다른 누구도 건드리면 안 돼. 그건 내가 며느리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자 평생의 사과야. 살아생전에 네 편을 못 들어준 것에 대한."
"지영아, 너는 이 집에 남을 자격이 있어. 아니, 이 집은 네 집이야. 30년을 이 집을 지켜온 사람은 바로 너니까."
가족들의 진심 어린 사과
편지를 다 듣고 나니 모두가 울고 있었습니다. 첫째 시동생이 저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어요. "형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둘째 시동생도 함께 무릎을 꿇었죠. "형수님, 용서해주세요. 엄마 마음도 모르고 형수님 고생도 모르고..."
남편이 제 앞에 섰어요. "여보, 미안해. 내가 당신 편이 못 됐어. 당신이 얼마나 외로웠는지... 나는 남편으로서 실격이야."
1년 후, 시어머니 이름으로 만든 장학금
시어머니 장례를 치른 지 1년이 지났어요. 저는 그 통장의 일부로 시어머니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었습니다. 시집살이 하느라 고생하는 며느리들, 혼자 아이 키우는 엄마들을 돕는 장학금이에요.
그리고 남은 돈은 제 노후 자금으로 쓰기로 했어요. 어머니가 원하신 대로요. 시동생들도 모두 동의했습니다.
저는 이제 이 집의 진짜 주인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시어머니가 30년 동안 지켜주신 이 자리에서 이제는 제가 이 집을, 이 가족을 지켜갈 차례니까요.
시어머니가 남긴 진짜 유산
3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시어머니는 저를 위해 매달 은행에 가셨어요. 겉으로는 무뚝뚝하셨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제 편이셨던 거예요.
시어머니가 남긴 건 30억이 아니었어요. 며느리를 딸처럼 생각하는 마음이었어요. 혼자 남겨져도 떳떳하게 살 수 있게 해주려는 사랑이었어요.
어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저 여기서 잘 살고 있어요. 어머니가 지켜주신 이 집에서 행복하게요.
모든 며느리들에게
혹시 당신도 시댁에서 힘들게 지내고 계신가요? 아무리 헌신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외롭나요?
시어머니의 마음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다를 수 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뿐, 마음속으로는 당신을 소중히 여기고 계실지 모릅니다.
그리고 혹시 당신이 시어머니라면 며느리에게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해주세요. 너무 늦기 전에, 후회하기 전에요.
가족이란 피보다 마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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